고통스러운 순간에서 예술과 삶을 사랑한 프리다칼로. 오늘은 "인생이여 영원하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그녀의 삶과 예술활동을 들여다봅니다.
작가 소개 _프리다칼로 (Frida kahlo) 1907~ 1954
칼로는 1907년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유태계 독일인 아버지 빌헬름 칼로와 스페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어머니 마틸데 칼데론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리다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후 오른쪽 다리가 내내 불편했습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공부로 극복하고자 했던 그녀는 멕시코 최고의 국립 예비 학교에 입학한 후,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을 고쳐주기 위해 의사가 되려 합니다.
그러나 1925년 큰 교통고로 심각한 부상과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던 딸을 위해 어머니는 침대에 거울을 달아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게 해 줍니다, 프리다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오롯이 혼자만의 세계에서 자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 후 프리다도 건강을 회복해 정상적인 생활이 조금씩 가능해집니다. 친구의 소개로 호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디에고를 사랑했지만 유산과 디에고의 불륜으로 평범한 사랑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프리다는 이혼 후 깊은 우울감에 빠지고, 오른쪽 다리와 척추의 통증으로 몇 차례 수술과 치료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프리다는 시련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남편만을 바라보는 삶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봤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각성한 그녀가 그린 자화상은 더욱 강인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입원 중인 프리다를 찾은 디에고와 각자 경제적으로 독립한 채 부부 생활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재결합하고 둘은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영혼의 단짝으로 지내게 됩니다.
그녀는 불편한 몸으로 더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국제적 명성을 쌓아갑니다.
1944년 극심한 통증으로 금속 코르셋을 입고 다섯 달 을 침대에 누워지냅니다. 그녀는 수술과 회복, 재수술을 겪으면서도 붓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예술가들은 그녀의 그림을 초현실주의 걸작이라며 칭송합니다. 그러나 프리다는 "초현실주의에는 관심이 없으며, 언제나 나를 둘러싼 고통과 멕시코의 현실을 그릴뿐"이라고 답합니다.
1953년 멕시코에서는 처음으로 칼로의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에는 그녀의 삶처럼 싱그러운 붉은색, 초록색, 파란색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전하고 싶다는 듯 커다란 글씨로 적어두었습니다 "인생이여, 영원하라"
1954년 마흔일곱의 프리다는 더는 고통 없는 세상으로 영원히 떠납니다,
작품설명 [인생이여 영원하라]
<인생이여 영원하라>는 프리다칼로가 세상을 떠나기 8일 전에 그린 유작으로 멕시코인이 가장 좋아하는 수박의 단면을 통해 그녀의 고통을 승화시켰습니다.
빨간색과 초록색의 강한 대비는 그녀의 열정적인 삶을 대변하고 눈부시게 파란 하늘은 화려하고 의미 있게 살고 싶었던 그녀의 삶의 지향점입니다. 파랗고 하얀 하늘 배경으로 빨간 과육을 드러낸 수박. 수박에는 강렬한 검은 씨앗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다른 잘라놓은 수박에는 검은 씨앗대신' Viva la Vida'라고 글자가 박혀있습니다.'삶이여 영원하리라 -비바 라비다(Viva la Vida)', 불운과 아픔을 향해 보란 듯 날리는 당당한 메시지. 이 말은 수박과 더불어 칼로를 위해 바쳐진 마지막 헌사가 되었습니다.
그 외 작품들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 프리다의 초창기 자화상 중 하나.
<프레임> 루브르 박물관에서 구매하면서, 루브르 컬렉션에 들어간 최초의 멕시코 화가가 됩니다.
<부서진 기둥>